▣ 기타/그림

(그림) 피리부는 소년

쥬 니 2011. 3. 14. 11:08

 

 

 

 

피리부는 소년

 

 

 

1866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낙선하고만 «피리부는 소년»은

이제 오르세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스페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고 감탄했었다.

특징 없는 배경에 그려진 커다란 왕족의 초상화 앞에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마네가 팡탱 라투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네의 이러한 감흥이 생생히 나타나 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너무나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필립 4세 시대의 어느 유명한 배우의 초상화»이다.

이 놀라운 회화 작품은 아마도 사람들이 전혀 시도해 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이리라.

온통 검은색 옷으로 차려 입은 남자가 생기 있는 모습으로

‘배경’이 아닌 공기에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거장 발라스케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마네는

자신의 화실에 돌아오자마자,

벨라스케스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로 영웅적인 느낌을 살린

실물 크기의 초상화 몇 점을 완성했다.

텅 빈 공간 속에 주인공만 홀로 있는 그림이었다.

 

당시 마네의 아틀리에는

파피니에르 병영 근처의 귀요트 거리에 있었는데,

황실 근위군의 소년 병사가 마네의 그림을 위해 군복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해 주었다.

마네는 회색을 바탕으로 한 매우 간결한 구도를 선택했는데,

이것은 인물을 그릴 때 나타날 수 있는

군인 풍속화 분위기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단순화된 그의 작품은

당시에 바스티앵 르파쥬가 그린

감상적인 어린이 초상화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마네는 본인의 작품이 살롱전에서 거부된 사실에 실망하여,

이 작품과 최근에 그린 다른 몇 점의 그림을 2개월간 본인의 화실에 전시해 놓았는데,

이 역시 부정적인 반응만을 불러왔을 뿐이다.

이런 비판 속에서 마네의 편을 든 유일한 사람은 에밀 졸라였다.

 

졸라는 특히 1866년 5월 7일자 레벤느망 잡지에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올해 살롱에서 거부되었던 «피리부는 소년»이다.

회색 광채가 도는 바탕에 소년 음악가의 모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년은 정면을 바라보며 피리를 불고 있다.

이보다 더 단순한 기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 작품만큼 강력한 효과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 특별한 진실과 활력이 느껴진다.

온갖 기교로 현실을 모방하기 보다 본질에 집중해 화폭을 넉넉하게 사용하였다.

부드러운 붓 놀림을 통해 18세기와 19세기 명성을 얻었던 에피날 지방의 채색판화 속 이미지처럼

인물의 몸을 둔하지 않게 평면화시켰다.

이 작품에는 두께감이 없지만,

소년은 콘트라포스토 구도로 두 다리에 중심을 준 채 안정적으로 서 있다.

그림자가 발 뒤쪽에 인위적으로 뻗어 있음을 볼 때,

소년이 눈으로는 분간하기 힘든 바닥에 고정된 듯이 서있음을 알 수 있다.

 

시선을 끄는 소년의 정갈한 군복은

피리 부는 소년의 앳된 얼굴과 대조를 이룬다.

금빛 피리가 흰색 멜빵끈에 매달린 채 어두운 색 조끼와

새빨간 바지 위에서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신발과 각반은 각각 검정과 흰색으로 처리하여 흑백의 조화를 통해 우아함을 배가시켰다.


1860년대에 들어

마네는 파리에 공연하러 온 음악가들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다.

이 작품들은 소재와는 달리 인물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 작품 속 피리 부는 소년 역시

입술을 다문 채 피리를 부는 척 하며 관중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당시 피리는 날카로운 소리로 보병들을 전투로 이끄는 역할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같은 상황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단축법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그린 소년의 손만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인물의 얼굴에서는 일종의 우수가 느껴지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마네가 그린 다른 음악가의 초상화에서도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