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그림

미술 작품 감상 외...슬픔안의 기쁨/이정하

쥬 니 2011. 3. 18. 08:53

 

Henri Fantin-Latour
[French Realist Painter, 1836-1904]



 

 

Scene from Tannhauser, 1864..

 

 

 

 

1200경(?)~1270경(?)

 

민간 전설의 주인공이 된 독일의 서정시인.

 

 

직업적인 연애시인으로 많은 귀족 후원자들에게 봉사했으며, 

 

 그가 언급한 후원자들로 미루어 1230~70년경에 활동했으리라 추정된다.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나, 넓은 지역을 여행했으며 1228~29년 십자군원정에 참여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라이히(서정적 노래 6편), 무도곡과 풍자성 짙은 연가 몇 편, 그리고 일군의 격언시들이 있다.

 


탄호이저의 전설은 15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단하우저 Danhauser〉라는 민요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 전설의 기원 자체는 13세기로 추측된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궁전에 홀려들어가 세속적 쾌락에 빠져 살지만, 곧 후회하며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로마로 순례를 떠난다.

 

교황은 탄호이저에게 그의 순례의 지팡이에 다시는 잎이 나오지 않으려 하므로 결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낙담한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궁전으로 되돌아오는데,

 

얼마 후 그가 버린 지팡이에 초록색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교황은 사신을 보내 탄호이저를 찾아보지만 그는 다시 발견되지 않는다.

 

이 전설은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이 전설을 다룬 작품 가운데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1845 초연)가 가장 유명하다.

 

 

 

 

 

Tannhäuser (Middle High German : Tanhûser; died after 1265)

was a German Minnesänger and poet.

He is not attested historically outside of his poetry,

which is dated to between 1245 and 1265.

His biography is consequently obscure.

 

 It is assumed that there is a connection to the old noble family of the Lords of Thannhausen,

who are still residing in their castle in Tannhausen, near Ellwangen and Dinkelsbühl.

There is a historical Tannhausen castle near Neumarkt in der Oberpfalz.

He was active at the court of Frederick II of Austria, and the Codex Manesse

depicts him in the habit of the Teutonic Order,

which suggests he might have participated in the Fifth Crusade.

 

Tannhäuser's poems are parodies of the traditional genre.

His Bußlied (poem on atonement) is unusual with regard to the erotic theme

of the remaining content of the Codex Manesse.

Tannhäuser was a proponent of the leich (lai) style of poetry.


 

 

 

 

Nymphs

 

 

nymph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연계 요정(妖精).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사(不死)는 아니지만 불로장수하며,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물의 요정은 오케아니데스(Okeanides), 산야의 요정은 오레아데스(Oreades), 수목의 요정은 드리아데스(Dryades)라고 이른다.

 

또, 젊고 아름다운 인간 청년이나 소년을 보면 한눈에 반해 다짜고짜 자주 납치해 간다.

이 때문에 여성의 과잉 성욕을 의미하는 님포마니아(nymphomania)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님프의 연애담은 신화나 전승에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슬픈 결말로 끝나는 것이 많다.

 

 

 



The Damnation of Faust (파우스트의 저주(천벌))

 

 

Faust

 

서유럽 민담 및 문학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하나로

지식과 권력을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독일의 마법사 또는 점성술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독일의 작가 괴테가 지은 희곡.

독일 전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학문과 지식에 절망한 노학자(老學者)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현세적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히지만

마침내 잘못을 깨달아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2부작으로 되어 있다.

 

 




 
Le Matin (아침)

 

 

 

 

 

 

떠났음으로 당신이
내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보내야 했음으로 슬픔이 오기 전
기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네

훗날 나는 다시 깨닫기를 바라네


이 세상 태여나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한사람 때문에 못내 가슴 아팠을지라도


내가 간직한 그 사랑으로 인해
내 삶은 아름다웠고
또 충분히 행복했노라고

 

 

슬픔안의 기쁨     . . . .     이정하  

 

 

 

 



마네의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 1861, 유화, 144.5-112.5cm.

 

 

마네는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로

17세기를 루벤스와 더불어 대표하는 렘브란트Rembrandt(1606-69)의

<수잔나와 장로들 Susanna and the Elders>(1647)을 보면

<놀란 님프>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한 누드의 놀란 표정을 지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네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고 그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때만 해도 마네는 아직 화단에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있었습니다.

 

마네가 새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한 건 1860년부터였습니다.

그해에 부모님의 초상과 어머니의 초상 등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렸으며,

이듬해에는 아내 수잔을 모델로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누드화인 동시에 그를 일약 유명하게 해준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에 등장할 누드의 예비 작품이기도 합니다.

<놀란 님프>를 그리기 위해 그는 1859년부터 세 점의 유화 습작을 마친 후 1861년에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거의 실물 크기의 그림입니다.

 

<놀란 님프>에서 주목할 점은 관람자와 그림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관람자가 모델의 긴박하고 개인적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네는 수잔의 누드를 고전적 포즈로 그렸는데,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가 성경에 나오는 수잔나를 이런 모습으로 그린 적이 있습니다.

 

벗은 몸을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듯 몸을 옆으로 튼 포즈인데

렘브란트의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와

<수잔나와 장로들> 그리고 프랑스풍의 로코코 양식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1703-70)의

<다나에 Danae>를 혼용한 풍만한 여체의 결정판입니다.

당시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와 <다나에>가 루브르 뮤지엄에 전시되고 있었으며,

마네는 그것들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북쪽 지방의 회화를 이용해 네덜란드 태생 수잔의 여체를 미화시키려고 한 것 같습니다.

 

<놀란 님프>는 1861년에 생페테르부르그Saint-Petersbourg에서 개최된

연례 황실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파리에서는 1867년의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1871년에 그가 매긴 이 그림 값 1만8천 프랑은 도저히 팔릴 수 없는 가격이었으므로

이 작품은 그가 사망했을 때 94점의 유작들과 함께 발견되어 1,250프랑에 팔렸습니다.

 

마네의 친구 프루스트에 의하면 <놀란 님프>는

마네가 1860년에 대작 <물에서 구조된 모세>의 부분으로

바로왕의 딸 수잔나가 나일 강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마네는 전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자 이것에 <놀란 님프>란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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