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좋은글·시-2

시간과 사람 - 김영태

쥬 니 2009. 10. 21. 17:13

 

 

 

 

 

 

 

1.

시간은 어지간히도 속절없이 갑니다.

섣날 그믐날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하여

퍼붓듯 쏟아지는 잠을 참느라 애를 애를 쓰다가

눈뜨면 어느새 설날 아침이 되어 있던

소년시절이 어제 같은데

그 세월이 어언 반세기였습니다.

 

하나를 배우고서 어쩌다 하나 반을 알았답시고 하늘에 들떠

세상의 잘난 사람 다 나와 보라던

그 구제불능의 철부지 시절이 어제 같은데

밤새 머리엔 서리가 내리고

 

이 점 영, 일 점 팔을 자랑하던 시력은

오만처럼 낙엽이 되어

안개낀 지면 위를 더듬습니다.

 

 

2.

세월은 참 덧없습니다.

세월만 믿고 사람을 낭비했던 순간들이 후회스럽습니다

허세, 시기, 질투, 그 철없음을 돌아보면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3.

시간은 몹시도 얄미운 마술사입니다

눈이 좋은 젊은 시절에는

누리는 것 못 보게 해놓고, 잃은 뒤에야 눈을 뜨게 하는

짖궂은 마술사입니다

 

시간의 등짐 속엔

미워할 것, 버릴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잃고 나면 하나같이 보배들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귀하다고 아는 것을

철이 든다 하였습니다.

 

철은

사람이 사람을 품어주는 체온 속에서 익어가는

과일 같은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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