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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홀가분!?

쥬 니 2014. 5. 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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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s of the Heart II - karunesh

 

  Sounds of the Heart II - karunesh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최소최대 조건은 홀가분함일지 모른다.

얼마전 13개월만에 경기를 치른 김연아 선수는

‘다 끝나서 홀가분하다’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지금 군복무 중인 큰아이는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지금 여기(now & here)’형 인간에 가깝다.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조바심이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쿨하다.


어떤 경우엔 무정할 만큼 훌훌 털어 버린다.

입대하는 날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정지시키더니 천원 한 장도 필요없다며

신분증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섰다.


집결지에 가서도 친구와 전화 통화하고 불안한 마음에

다만 몇 만원이라도 챙기고 싶어 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일 텐데

마치 입대 체질처럼 아무것에도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실상은 그 반대인데,

누가 보면 군 입대를 학수고대했던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매사가 그렇다.


 

중국 원나라가 멸망했을 때

몽골인들이 아무 미련 없이 말 타고 자기들 고향인

초원으로 돌아간 역사적 사실을 환기하며

한 작가는 ‘담백한 기세’라고 표현했다.


가장 크고 화려한 곳에서

가장 소박하고 간명한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

 바람처럼 가볍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담백한 기세들을 마주하는 일은 신선하게 충격적이다.

본래 우리의 속성이 그러한 것임에도

살면서 플러스 알파가 수없이 덧대어진

상황에 익숙해져서 그렇다.

 

오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이 보태진 상태가 아닌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에서 가장 큰 기쁨을 얻는다.

그것이 홀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은 430여개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긍정 감정의 최고 상태로 꼽은 단어가

바로 ‘홀가분하다’이다.

 

얼핏 생각하면 의미있는 성취나 물질적 획득 혹은

짜릿한 자극에서 비롯하는 ‘죽인다, 황홀하다, 앗싸!’ 같은 단어가

긍정의 최고 경지일 듯 싶은데 결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최소최대 조건은 홀가분함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볼일을 제대로 보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

숙변의 고통을 체험한 사람은

그 개운함의 실체를 생생하게 절감한다.

무엇을 취해서가 아니라

잘 버렸을 뿐인데 개운해지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구원의 음성

또한 새로운 무엇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홀가분함이 최고의 안식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얼마 전 13개월 만에 정식 대회에 참가한 김연아 선수는

경기가 끝난 후 오랜 시간 많은 부담감에 시달렸다며

‘다 끝났다는 것이 너무나 홀가분하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융은 정신분석 치료의 목적을 자기개별화로 규정했다.

분석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것보다 더한 본질은 없다.

그것은 그대로 홀가분의 개념과 상통한다.


 

모든 거품을 걷어내고

홀가분한 자기와 마주할 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한 최고경영자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뭔지

고민해 본 결과를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열심히 사는 게 아니더라. 뭔가를 포기하면 되더라.’

소극적이고 패배적인 발상이 아니라

홀가분 행복론의 핵심이 제대로 담긴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포기하는 것은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는 것이다.

숙변을 제거하고 내 몸의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혹은 질병에서 회복되는 것처럼.


홀가분에는 과거나 미래의 개념이 없다.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과거에 홀가분했었다 혹은 미래엔 홀가분할 것이다, 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동시에 왠지 부자연스럽다.

홀가분 행복론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를 돌이켜 봐야 행복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행복 감각은 지나치게 관성적이다.

그때 행복했었다가 지금 왜 중요한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에

모든 자원과 감각을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 (숙변을 떠안고 가듯)

안 해도 되는 일인데 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 명징한 답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홀가분의 시작이다.


 

‘지금 여기’에서 홀가분하게 나를 느끼는 일,

그게 행복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나는 믿는다.

 

큰아이는 이달 말에 전역한다.

언제 그런 시간이 있었냐는 듯

군에서의 시간을 금방 잊고 또다시 ‘지금 여기’에 충실할 것이다.

말년 휴가 나온 느긋한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축하한다.

홀가분하겠다.

 

 

이명수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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