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4월... 발행 된 책.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심리학과 치유법이
행복보다는 고통, 신경증, 정신질환 등의 불행 연구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불행을 극복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행복은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안에 이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먼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로 책 제목처럼 행복을 내일로 미루기 때문이라고...
사실 우리는 행복에 여러 가지 조건을 거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고,
취업 준비생들은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고,
애인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현재 상황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행복지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설사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더라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또다시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원하며 행복하지 않는 시간이 시작된다.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게 행복에 있어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늘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결코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없다.
지금 행복할 것인지 여부는 결국 바로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책들은 읽을 때는 와닿는 내용도 많고 자극이 되지만 이를 꾸준히 실천에 옮기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행복도 일종의 습관처럼 몸에 배여야 하지 않을까.
늘 행복에 조건을 내걸며,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바보였던 내가
지금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역시 많은 변화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HAPPINESSISNOWHERE'
우리는 이 문구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Happiness is nowhere' 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은 지금 여기 있다. Happiness is now here' 이다.
똑 같은 두 글을 읽는 두 가지 반응은 인식의 차이다. 행복도 이처럼 외부 세계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믿는 한 당신은 엄청난 실망과 슬픔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보려고 하지 않는 한 행복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행복, 현재의 행복으로 가는 여정은 물리적 거리나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이 아니라 개인적 '자아회복'의 여정이다.
.......
철학자들은 원죄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 대해 긑없이 이야기한다.
언론사에서는 나쁜 뉴스를 전달하고 만들어내려는 중독성 강하고 반사회적이고 강박적인 욕구로 고통 받는 기자들이 가득하다.
....사람은 가장 중ㅇ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익숙한 것은 실제인 것처럼 느끼데 된다.
우리 사회안에 기쁨보다 고통, 웃음보다 눈물, 사랑보다 두려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행복해 질 수 있는 우리의 영원한 내적 잠재력을 점점 더 보지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는 행복을 두려워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우리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하게 된다.
사기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며 심지어 살인도 불사한다.
행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추구가 목적이 된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강하게 몰두하면 할수록, 우리는 실제로 행복해져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젼혀 되어 있지 않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그 전제 자체가 거짓이므로 언제나 실패가기 마련이다.
행복은 당신의 외부에 있지 않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지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신이 물었다. "거기 누군가?" 그가 대답했다.
"접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루미요" 내면에서 신이 말했다.
"가라. 여기는 우리 둘이 있을 자리가 없으니 " 루미는 완전히 낙담한 채로 그곳을 떠났다.
그는 명상에 잠겼고 기도 했으며, 나중에 다시 한번 사랑하는 신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사랑하는 신이 물었다. "당신입니다" 그제서야 환영의 인사와 더불어 문이 활짝 열렸다.
진정한 행복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 자기자신을 경험하는 일이다.
덧없는 쾌락으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행복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아주 가혹하고 끊임없는 자기평가 때문에 고통스럽다.
본연의 자아는 늘 자유로운 반면, 에고는 늘 평가하고 당신을 가둔다.
당신의 에고는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포함한 모든 것을 심판하다. 당신의 평가는 인식이라는 창을 더럽힌다.
평가는 당신이 보는 모든 것들을 걸러내어 당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게 된다.
조건화된 당신의 자아 즉 에고가 두려움에 대한 보상심리로, 끝도 없이 당신을 평가하고 밀어 붙이고 몰아대고 처벌하는 바람에
내면 깊은 곳에서 당신은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당신의 행복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도록 배웠다. 당신의 에고는 중독자이다.
기쁨은 자기 수용이다. 기쁨은 자기평가에서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당신의 에고와 영혼은 모든 것을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다.
에고의 기도가 언제나 '밖을 보라' 라면 당신의 영혼의 기도는 항상 '내면을 보라'이다.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격은 없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 수용, 즉 당신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 들이고
당신이 온전하고 가치있고 건강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와 철학 전통은 행복해지려면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당신을 격려해왔다. 특히 중세 기독교는 행복에 대해
몹시 가혹했고 아예 웃음을 '악마의 노래'라고 비난하고 행복을 금욕적인 자기통제의 위협이라고 공격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예수의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좀처럼 보지 않는다.
이 명백한 불균형에 작극 받아.......하지만 예수님은 기쁨으로 가득한 분이었다!
일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노동윤리는 우리가 갖는 죄의식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혼란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통윤리는 고통이야말로 행복의 선행요건이라고 당신을 호가신기키려 할 것이다.
이 윤리는 또한 사랑을 잃어봐야 사랑을 알 수 있다고, 갈등없이는 평화를 누릴 수 없다고, 성공하려면 실패를 맛 보아야 한다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약해 봐야 한다고......
그러나 진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고통이나, 사랑을 알기 위한 두려움이나, 기쁨을 누리기 위한 고통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고통에 연루되어 있는 이유는
고통을 통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꼭 해야 할 것들을 요구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특히 인지 심리학은 '의무'를 고안해내는ㄴ 매우 불합리하고 망상적인 에고의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지적해 왔다.
합리적 정서 앵동 치료의 창시자 앨버트 엘리스는 이런 에고의 생각을 '머스터베이션'
(musterbation -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 관념)이라고 부르면서 놀려댄다.
행복은 다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은 이미 이곳에 있다!
더 많은 것'을 뒤쫒느라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도, 귀하게 여기지도 못한다.
우리는 '다음에' 올리조 모른다고 희망가는 것을 위해 지금 가능한 것을 희생한다.
'그 곳으로' 전력 질주하느라 여기에서 가능한 것들을 모두 내던져 버린다.
그러나 자기를 수용하지 않으면 '더 많이' '다음에' '그 곳에'의 행복은 마치 사막의 길 잃고 목마른 여행자가 보았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부처의 기쁨을 찾는 것은 소를 타고 앉아 소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도(道)가 가까이 있는 데도 사람들은 멀리서 도를 찿는다"
"왜 물에 사는 동물들에게 물을 마시라고 말하는가?"
"신이여, 제게 행복을 주소서! 제게 당신의 사랑을 보내 주소서! 제게 평화를 주소서!"라고 기도하지 말라.
이런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미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이제 이해하겠는가?
그 대신 이렇게 기도하라.
"신이여, 제 기쁨을 드러내 보여주소서. 신이여, 사랑이 여기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 두려움을 치유 해 주소서,
신이여, 제가 다시 마음의 평화를 느끼돌고 가르쳐 주소서"
기억하라 - 진정한 기도는 우주에서 보낸 택배 서비스가 아니다.
진정한 기도는 이미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더 이상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행복하려면 '현재'를 위해 '특정한 때'를 포기해야만 한다.
'기다려 보자'는 병은 단지 두려움일 뿐이다.
"기다리지 않고 나섰다가 실패하면?" 하고 생각하겠지만, 기다리면서 당신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음으로써 당신은 그토록 기다렸던 자신감, 권위, 기회를 모두 얻을 것이다.
치유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당신의 의지뿐이다.
불행은 에너지와 섣부른 비판적 판단이 합쳐진 것이다.
당신의 에고는 일을 잘 '하고' 돈을 많이 '번 다음' 그 후에 '행복해지라'는, 식이다.
본연의 자아는 당신에게 먼저 '존재하면' 그 다음에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먼저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라!
감사가 조건없는 것이 되게 하라. 모든 것에 감사하되 이유 없이 감사하라. 그저 감사하라.
감사를 실천하기 전에는 당신은 어둠 속에 있고 감사랄 것이 별로 없는 듯 보인다. 일단 감사하기 시작하면 새로운 빛이 밝아본다.
때로느 천국만큼 찬란한 빛이 밝아온다.
진정한 감사는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이어나며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진정한 섬물은 외부 세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지니고 다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하는일이
'충분하지 않다'라는 의심과 두려움에 끊임없이 쫓겨 다닌다.
때로는 충분해 보이는 것을 찾고도 결국은 실망하고 낙담한다.
사실 , 자신의 자아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까지는 늘 실망할 것이다.
우리는 사물의 존재 방식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을 통해 사물을 본다.
인생의 10%가 상황이고, 90%가 상황에 대한 반응이며,
환경과 상황은 분명, 인생의 색을 입혀주지만, 그 색깔이 무엇일지 선택하는 사람은 당신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고통은 숨을 쉬고
눈물음 미소 짓고
아픔은 누그러지고
죄의식의 날이 무뎌지며
판단은 판단하기를 잊고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소외는 끝이 나다.
사랑이 있는 곳
그곳에 당신이 있다.
당신이 온전히 기쁘지 못한 이유는 당신이 하나님의 창조물들 중 하나인 누군가를 충만한 사랑으로 대하지않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청하는 나의 부탁은 이것이다.
'오늘 사랑을 찾지 말라. 그 저 사랑하라.
오늘 평화를 찾지 말라. 그저 화해하라.
오늘 기쁨을 찾지 말라. 그저 기뻐하라'
너무나 단순하고 어리석고 미친 짓처럼 들리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효력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그저 행복해질 수 있다.
* * *
컵에 음료수가 반쪽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은 "아니 벌써 반이나 마셨어!"
어떤 사람은 "우아~ 아직도 반이나 남았네!"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행복도 이처럼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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