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가가 1982년에 쓴 소설.
잡지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어느 날 계룡산으로 취재를 떠난다.
그리고 우연히 <남조선태조백성제>, 즉 <황제>의 이야기를 듣고 <백제실록(白帝實錄>이라는 기록을 읽게 된다.
주인공을 통해 본 황제는 3.1 운동과 8.15 해방, 6.25 사변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며 우리 역사의 근대기를 살았던,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정감록>에 등장하는 정 진인이라는 확고한 신념 하에 일생을 보낸 사람이다.
전통 문화에 대한 회귀 욕망과 거부 의지를 섬세하게 담고 있는 장편소설. 전 2권.
이책의 주인공인 황제는 자신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기가 하늘의 천명을 받은
황제인 줄 알고 일본군에게 대항하고 만주에서까지도 일본군에게 대항하며...
황제의 에피소드가 무척 재미있다.
일제시대 우리 민초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고
동양의 이데오르기와 그 당시 시대상도 잘 반영하고 있다.
작가의 해박한 중국 역사를 꿰뚫고 있음에 감탄하였고,
황제의 일거수 일투족의 예를 중국 왕이나 역사의 예를들어 설명하고 있는 그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 줄거리 >
<황제>는 갑오농민전쟁이 끝날 무렵,
계룡산 기슭의 작은 마을 흰돌머리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정 처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이한 이야기들을 퍼뜨려서
황제가 장차 이 나라를 통치하게 되리라는 천명을 받은 인물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정 처사는 황제에게 어려서부터 정통 유학을 익히게 하는 등,
제왕에게 합당한 교육을 시킨다.
또한 황제 자신도 가사 상태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듣게 됨으로 해서 스스로 황제라고 믿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이씨 조선이 몰락하고, 황제는 자신이 받은 천명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황제는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지만,
어설픈 무기로 당당하게 나선 흰돌머리 마을의 군대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
그후 황제는 가만히 때를 기다리기 보다 앞날에 대비하련다는 목적으로 세상 구경을 나서게 되는데,
기차를 처음 보고는 괴물이라 생각하고 도망치는 등 여러 가지 소극을 벌인다.
이후 흰돌머리로 돌아온 황제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장터 거리의 삼일운동 인파에 합류하게 된다.
<조선 독립 만세, 황제 폐하 만세>라는 외침을 자신을 향한 것으로 착각한 황제는
흥분에 겨워 일본 순사의 목을 베게 된다.
일경의 수사가 흰돌머리로 옮겨지고 있을 즈음,
황제는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게 되고,
황제의 큰 뜻을 높이 산 중국인 척 대인의 호의로 넓은 땅을 얻는다.
그곳에서 황제는 나라를 세우고, 풍요한 삶을 꾸리게 된다.
여기에서 황제는 또 한차례 군사를 일으키려 하는데, 사려 깊은 신하의 조언으로 다시 흰돌머리로 돌아가게 된다.
갖은 고초 끝에 황제는 흰돌머리로 돌아오지만,
이미 세월이 흘러 마을 주민들은 거의 황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들들의 눈가림으로 황제는 다시금 성세를 누리게 된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하고, 황제는 피난을 가는 도중에도 맥아더의 군대를 위로하고자
전시 징발을 명하는 등 제왕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으려 한다.
이후 황제를 곁에서 돌보던 둘째 아들이 공산군이 된 형으로 인해
일본으로 몸을 피하게 되자, 한 신하가 모반을 꾀하여 황제는 가산을 모두 날리게 된다.
그리하여 황제는 신도안 골짜기로 이주하고, 여러 사교 집단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된다.
말년에 이른 황제는 다스림의 미망을 접고 장자류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 * *
황제는
동학 농민운동이 한창 벌어졌던 1895년에 태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킨 1972년에 사망한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바로 '남조선 태조 백성제' 즉 황제다!
격변의 연속이었던 78년 동안의 한국 근현대사 시기를 관통한 자칭 '황제'의 삶은
잡지 기자인 서술자가 취재 중 우연히 접한 황제의 신하이자 능참봉인 우발산의 기억과 변약유, 신기죽 등의
신료들에 의해 기록된 '백제실록'을 통해 드러난다.
서술중에 수많은 중국의 고사와 사상이 인용되고 있다.
'황제'는 평생 동안 외세와 서구 근대문물을 철저히 배척하고 유가, 법가 등 전통적인 가치를 굳게 고수한 인물이다.
기세는 당당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곳곳에서 실패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러고난 뒤에도 전통적인 가치에 입각한 자기합리화를 하는 모습에서는 소위 말하는 '정신승리법'이 느껴진다.
기차나 비행기등의 서구의 기기를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선조들이 이러한 기계문명을 이루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며 일제와 남북한 '역적'들과의 소규모 분쟁이 어떻게 유리하게 풀린 걸 '황제의 위엄하에 대승을 거두었다'라 서술하는 등
현대인이 보기에는 매우 황당하며 어떻게 보면 애처로워 보이는 행위로 가득차 있다.
서술자는 황제측의 말을 그대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황제의 '위업'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싣는다.
덕분에 황제의 과장돤 면모가 더욱 더 잘 드러나게 되 더욱더 황제가 우습게 느껴지게 된다.
황제는 전통적인 관념과 사상을 통해 서구 근대의 산물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두 이념 모두 결국은 민중들을 착취하기 위한 허울 좋는 명분이라는게 황제의 해석이다.
황제는 말년에 이르어서는 도가적인 가치에 심취해
다스림과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이는 근대 서구에서도 이상적으로 여기는 모습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황제가 사망한 바로 그해에 '남당'에서 '한국식 민주주의'을 내세워
진정한 '황제'가 되는 어떤 이의 '유신'이 이루어졌다는걸 생각하면, 황제에게 호감이 간다.
< 책 내용 중...>
"중광(重光) 이십년(二十年) 범금(犯禁)한 자들을 징치(懲治)하시어
왕법(王法)이 엄함을 보이시고 드디어 검(劒)을 봉(封)하시다.(216쪽)
....."우리가 높고 귀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애.
야. 우리 모두 엎드려 주상 전하께 잘못을 빌자"
어떤이는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돌아보는 그 젊은이의 눈이 장난스레....(227쪽)
....이에 황제는 속전(贖錢)조차 받지 아니하고 묶인 남학생까지 풀어 주었다.
승리를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관대함이었다.
우발산, 두충, 변약유 등도 여학생들이 애교 섞인 웃음으로 따라 올린 술과 추켜세우는 말에
마음속의 불만을 잊고 거의 황홀한 기분으로 돌아갔다.
실록에 기록된 <엄한 정치>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어쨌던 황제의 화려한 승리였다.(2권...237쪽)
... 그러다가 황제는 문득 그 기자를 수상쩍은 눈으로 물었다.
"너는 무엇하는 자냐? 어째서 믿으려 들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 캐묻느냐?"
"신문사 기잡니다. 계룡산에 취재 나왔다가 폐하의 말씀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 물러가라. 내 이미 세상의 시비를 잊었으니 너희 무리와 어울려 말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폐하, 어찌하여 신문을 그리 나쁘게 보십니까?"
"내 도리어 묻겠다. 너희들이 관리냐? 남당이 흔히 하는 선거라는 것에 뽑혔느냐? 아니면 무슨 과거 같은 시험이라도 쳤느냐?"
"선거도 시험도 치른 바 없습니다." "그럼 도대체 너희들의 그 대단한 권세는 어디서 나왔느냐?"
"권세라니요? 저희들은 다만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여러 가지 세상 소식을 전해 줄 뿐입니다."
"어떤 특정한 패거리의 주의 주장을 퍼뜨리는 것도 세상 소식이냐? 힘있는 자들의 비행을 묻어 주거나 변명
해주는 것도 세상 소식이냐? 끔찍한 일만 골라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잡스러운 얘깃거리나 꾸미는 것도세상 소식이냐?"
"폐하께서는 저희들의 일부 그릇된 점만 전부로 보고 계십니다."
"수호지를 쓴 시내암은 도둑을 찬양했다 하여 자손 5대가 모두 눈이 멀었다고 한다. 말과 글이란 그토록 다루기어려운 것이다.
너희들은 백성들에게 뽑힌 것도 아니요. 나라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은 일도 없으면서 듣기에 대단한 권세를 누린다고 한다.
그것은 필시 말과 글의 힘에 의지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말과 글의 힘은 그 논의가 올바르고 전하는 내용이 참된 데서 나온다.
그런데 너희들은 혹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혹은 매가 두렵고 시비가 싫어서,
곡필과 과장을 일삼으며 은폐와 왜곡을 밥 먹듯 하니 어찌 도둑을 찬양하는 것과 다를바 있으랴"
황제께서 당시의 신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셨는지는 몰라도 그 꾸짖음에는 자못 준엄한 데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니, 그것은 무안하게 쫓겨난 그 기자가 쓴 기사 때문이다.
며칠 후 신문사로 돌아간 그 기자는 계룡산이란 제목으로 20회에 가까운 연재물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한 회를 온통 황제를 희화로 만드는데 바치고 있다.
있지도 않은 즉위식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왕중지왕이니 천신지수니 하는 말을 속되게 해석하여,
황제를 '한눈에 광기를 알아볼 수 있는' '도교 계통의 사교 교주'로 규정한 내용이었다.
그 죄만으로 그의 자손은 5대까지 입이 막히리라 ...(2권..238 ~ 239쪽)
< 느낌 >
돈키호테 처럼 황제가 펼쳐 나가는 일화들은 다소 과장적이지만
연민 어린 실소를 자아내게 하며...
언뜻 편집증적인 공상가의 질병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겠지만
다시 보면 인간이 역사적 환경과 지신과 자신의 주변의 신념체계 여하에 따라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 된다.
어찌보면 답답하고 이상한 종교 집단과도 같은 그들의 광기를 뭐라고 해야할지...ㅎㅎ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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