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사랑의 기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보다도 작은 것도 좋다고,
많은 것보다도 적은 것도 좋다고,
높은 것보다도 낮은 것도 좋다고,
빠른 것보다도 느린 것도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 안도현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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