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샹송

Hymne À L'Amour / Edith Piaf

쥬 니 2010. 2. 25. 16:52
 

  

 

해변으로 밀려 드는 파도와 같이...
가슴 깊이 밀려 드는 떨림이 강한 그녀의 노래...
불과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147 cm 작은 키,  세계적인 발라드풍 프랑스 여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의 삶을 보여 주는 영화, 

La Vie En Rose (장미 빛 인생)도 만들어 지고...


Édith Piaf 는 

1950년대 프랑스의 대중적 국민가수.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한 그녀의 노래는

시대의 삶을 투영하였고...
떨리는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그녀의 노래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기 까지...
그녀가 살아 온 인생이 마감될 때까지...
이 영화는 그녀의 일생을 세세히 보여 줍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사랑을 다시 한번 회상해 보세요.
그녀의 인생이 녹아 뼈까지 스며드는 노래 한번 들어 보시죠.

 

 

 

 

Hymne À L'Amour

                                                     - Edith Piaf

 

 

Le ciel bleu sur nous peut s"effondrer
Et la terre peut bien s"ecrouler
Peu m"import!!!!!!!!!e si tu m"aimes
Je me fous du monde entier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Tant qu"l"amour inond"ra mes matins
Tant que mon corps fremira sous tes mains
Peu m"import!!!!!!!!!e les problemes
Mon amour puisque tu m"aimes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 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 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J"irais jusqu"au bout du monde
Je me ferais teindre en blonde
Si tu me le demandais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J"irais decrocher la lune
J"irais voler la fortune
Si tu me le demandais

금발로 머리를 물들이기라도 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하늘의 달을 따러, 보물을 훔치러 가겠어요

Je renierais ma patrie
Je renierais mes amis
Si tu me le demandais
On peut bien rire de moi
Je ferais n"import!!!!!!!!!e quoi
Si tu me le demandais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건 해 내겠어요

Si un jour la vie t"arrache a moi
Si tu meurs que tu sois loin de moi
Peu m"import!!!!!!!!!e si tu m"aimes
Car moi je mourrais aussi
Nous aurons pour nous l"eternite

만약 어느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Dans le bleu de toute l"immensite
Dans le ciel plus de problemes
Mon amour crois-tu quon s"aime
Dieu reunit ceux qui s`aiment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에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Hymne À L'Amour

 

 

 

  

 

    


 

 
 
Edith Piaf
 
프랑스의 빌리 할러데이로 추앙되는 그녀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꿋꿋한 삶을 살면서
그 역경을 노래에 담다.
'Piaf('참새'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작은 키에 가녀린 몸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감정어린 목소리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그녀를 닮은 많은 후대 가수들을 만들어냈다.
 
Edith Piaf, 본명: Edith Giovanna Gassion는
1915년 12월 19일 파리의 베르빌에서 태어났다.
 
서커스 단원이던 아버지와 카페에서 노래했던 어머니는
그녀를 낳자마자 거리에 내버렸다.
숱한 고생으로 6살에 잠시 시력을 잃기도 했었던 그녀는
거리에서 노래부르며 동냥으로 목숨을 유지했다.
10살때부터
직업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으며
이렇게 살아가던 중 16살에 한 군인과 관계를 갖고
첫 딸 Marcelle을 출산했지만,
아이는 2년 후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1935년, 프랑스의 작은 술집 'Gerny'의 주인이었던
Louis Leplee가 길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 보고
당시 20살이던 그녀를 가게에 데려와 노래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온갖 풍파에 시달린 삶이 배어나는 그녀의 노래는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La Mome Piaf'('The Kid Sparrow
-작은 참새'라는 뜻)로 불리는
열정적인 가수로 알려지기 시작 했으며
그 범위를 넓혀갔다.
 
 작곡가 Ramond Asso와 Maurice Cheval!ier의
도움으로 그녀의 삶이 다듬어진 노래로 표현되면서
거칠고 굴곡 많은 그녀의 인생이 예술로 승화되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뇌에 찬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서서히 샹송계의 스타가 되어 갔다.
 
1936년 
그녀의 성이었던 'Gassion'을 버리고
'Piaf'라는 이름을 사용, Edith Piaf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를 발굴해 키워준 Louis Leplee가 살해되면서
Piaf는 잠시 시련에 빠졌다.
2차 세계 대전(1939~1945) 즈음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활동 영역을 미국 대륙으로 넓혔다.
1946년 워싱턴에서 미국 첫 투어 공연을
성황리에 치루면서 그녀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노래했다.
 
이런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는 미국에서 만난 권투선수 Marcel Cerdan.
 1948년 이들은 결혼했고
그녀는 사랑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됐으며
진실한 사랑을 체험했다.
하지만 Cerdan은 이듬해 그녀를 뒤로한 채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떴다.
 
1950년 그녀는 너무나 사랑했던 그에게 바치는 곡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를 만들었고, 
이 애절한 러브송은 그녀가 사랑을 위해 태어난 가수라는
평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이 곡은
 이후 몇 장의 앨범에 영어로 실리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의 음악 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한 곡.
하지만 그의 죽음 때문에 크게 상심한 그녀는
술과 마약을 도피처로 삼기 시작...

이후 Piaf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지만
그녀는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1952년
가수이자 작곡가 인 Jacques Pills와 결혼, 
'Je T'ai Dans La Peau'를 부르기도 했고,
1953년
Les Amants D'un Jour와
'오토바이를 탄 남자(L'Homme A La Moto)'를 녹음했다.
이듬해에는 미국을 11개월 동안 돌면서 장기 투어를 가졌고,
워싱턴과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도 공연을 했다.

또한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
'Les Amants De Demain'(1956),
'Paris Chante Toujours',
'La Petit Lili' 등에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1959년
친분이 있던 작곡가 Georges Moustaki에게서 받은
'주인님(Milord)'이 영국에 이어 이탈리아, 독일,
네델란드에도 알려지게 되면서
더 많은 투어 공연이 이어졌다.
또 1960년에는 작곡가이자 친구였던
찰스 드몽(Charles Dumont)의 곡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
그리고
그녀의 자작곡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샹송계의 대모'로서의
그녀 이름을 후세인에게 널리 각인시켰다.
 
 1962년
그녀는 20살 이상 연하인 Theo Sarapo와 결혼.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일하는 활력을 줬으며,
그녀는 그에 대한 사랑을
'A Quoi Ca Sert L'Amour'로 표현하기도 했다.

항상 관중들을 전율하게끔 하며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그녀는
1963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노래할 때 항상
검은 드레스를 입던 작은 체구의 그녀는
이브 몽땅, 죠르쥬 무스타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의
유명한 보컬리스트를 만들어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