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생활/책 읽고..

(책) 명상까페 - 김주현 수상록

쥬 니 2010. 5. 14. 17:27

 

 

 

 

2010.5.14. 오후 늦게  이 책을 모두 읽었다.

 

 

 

책 내용 :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을 구원하는 종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통찰한 명상서! 


저자는 95가지 인생의 문제를 4부로 분류하여 수행자적 입장에서 근원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1부,〈나를 나 되게 하는 것〉에서는 자아를 성찰하여 스스로의 격을 높여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2부,〈인간은 사랑을 위하여 산다〉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과 그 태도에 대해서 나아갈 바 방향을 제시해 준다. 
3부,〈잃어버린 신을 찾아가는 인간〉에서는 인간을 창조한 신과 그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인간의 역할, 장차 미래에 발생할 변천 모습에 대해서 예견한 바를 피력하고, 
4부,〈맞춰가면서 사는 삶〉에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해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명상 끝에 얻어낸 사념의 진수를

조롱박으로 샘물을 퍼올리듯 조금씩 퍼올려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깨우침을 준다.

 

 

 

 <책 내용 중에서>

 

 

1. 얼굴의 얼과 굴의 골짜기

 

사람은 머리에 얼굴이 있고, 짐승은 머리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머리에 얼굴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얼(정신)'의 굴(골짜기)'이라는 말이다.

즉 얼이 깃들어 있는 골짜기라는 말이다.

짐승도 사람과 같은 굴은 있으나 얼(정신)이 없으니 얼굴은 없고 대가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늘로 부터 얼을 이어받아서 태어났고 그 얼을 완성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것을 인격이라고도 하고 개성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입으로 덕담을 해야 한다.

내가 한 말로 인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도 안 되고 거짓된 말로 속여서도 안 된다.

그렇게 하게 될 때 내 얼을 망치게 된다.

반면에 내 입으로 참된 진리를 설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감화시키거나 덕담으로

상대방에게 희망을 준다면 얼의 굴인 입을 통하여 내 얼이 아름답게 성장해 가게 된다.

........그리고 얼의 굴 가운데 귀를 통하여 이입되는 소리에 의하여 내 얼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입은 반드시 좋은 말을 해야 하지만 귀는 '좋게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귀가 두개인 것은 듣고 흘리라(?)는 것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얼굴 가운데 눈을 통하여 이입되는 자극이 내얼을 형성하기 때문에 잘 봐야 한다.

그렇다면 잘 보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인가?

'좋게 봐야'한다는 말이다. 보이는 것 역시 내 뜻과 상관없이 보인다

.... 그것을 모조리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그것을 모두 소화해 낼 때 내 얼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66~69쪽) 

 

 

 

 

 2. 산이면 다 산이고 꽃이면 다 꽃이다.

 

산이 아닌 산은 없다.

큰 산만 산이 아니다. 산이면 다 산이다. 앞산도 산이요. 뒷동산도 산이다. 큰산은 작은 산들이 있어서 큰 산이 된다.

백두대간이라는 큰 산맥을 이루면서 백두산이라는 큰 산이 있다. 

......(중략) 화초로서의 꽃은 아름다운 색과 향기로 우리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시켜 주지만,

유실수의  꽃은 감미로운 꿀과 그 열매로 미각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화려함도 없고 열매도 없는 들꽃이라고

무관심해하지만 벌과 나비들은 그 꽃밭에서 군무(群舞)가 한가롭다.

인간의 주관적인 논리로 자연을 대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대단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진리라는 것은 순수한 이성과 감성, 그 자체여야 한다.

꽃을 보면서 주관적인 평가를 하는 이는 장사꾼이거나 꽃꽃이 선생일 것이다.

그것은 꽃에 대한 진리가 아니다.

꽃을 보는 순간 아! 하고 반가와 하는 순수한 이성과 감성이 꽃에 대한 진리다.

순수라는 것은 지극히 객관적인 감정이다.

선(善)은 주관적인 신념이 아니다.

누군가르 위하고자 하는 수순한 감성, 그 자체가 선이어야 한다.

.....(중략) 신념적인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순수 이성에 대한 정신적인 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그게 반드시 선일 수가 있겠는가?

히틀러나 일왕이 전쟁을 일르킨 것도 알고 보면 자기 신념적인 선이 그 동기였지만

이것은 집단적이 정신장애를 양산하는 전쟁이었을 뿐이다.

종교가 갖는 순수한 진리로 돌아가면, 진리 아닌 것이 없지만,

자기 신념적 신앙이 되면 그때부터 종교는 사회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종교가  순수 자체를 잃어 버리면 대중우민화의 선구자?로서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는 함정이 있다...(중략)

뜰에 핀 장미를 보는 사람이 불교인이든 기독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간에 하나같이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것은

순수이성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듯이 그러한 순수이성으로 돌아가면 기독교도 불교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진리만이 존재한다느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칸트가 말한 순수이성을 되찾아야 할 사람들이

순수의 가면을 쓰고 광대놀음을 하는 종교인이 아니겠는가?

신이 있다면 그 신이야 말로 순수이성 그 자체로 꽉 차 있는 실체여야 할 것이다.

....(중략) 선이면 다 선이지 누구만을 위한 것이 선이라는 신념적인 종교는

큰 산만을 산이라고 우기는아집과 다르지 않고

화려한 꽃만을 꽃이라 여기는 것고 다르지 않다.

이것은 반순수이성이며 이성적인 타락이다.  (132-135쪽)

 

 

3.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잘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넓은 저택에 명품을 즐비하게 쌓아놓고 즐기면서 사는 것을 일컬어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해놓고 사는 것'이지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삶의 주체는 사람이지 환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 자체를 두고 평가되어야지, 갖추고 사는 '환경'을  가지고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성현을 비롯한 역사적인 인물들의 경우를 보면,

하나같이 '삶' 그 자체를 두고 평가되었지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의미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 환경의 주체'로 살아가기 때문에

'잘 사는 것'보다 '잘해놓고 사는 것'에 관심이 없는 법이다. (173쪽)

 

 

4. 기타

 

자기가 믿는 종교의 신당에 엎드려 천통(天通)을 구하지 말고

관계 맺고 있는 인간 관계에서의 인통(人通)에 문제가 없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36쪽)

 

 

사람들이 '종교는 싫어해도 성인은 좋아하는' 이유를 이 시대의 종교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나 석가세존께서는 자기를 충종하는 종교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공인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태양이 곡식과 잡초를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이면 모두 비추듯....(51쪽)

 

 

 

사람은 태어나서 세가지 이름을 갖는다

남자는 '아들, 남편, 아버지' 가 그렇고, 여자는 '딸, 아내, 어머니'가 그렇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이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소위 공부(工夫)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유식(有識)을 많이 '아는  데' 둘 것이 아니라

예도(禮道)를 지키고 '사는 데' 둬야 한다. (110쪽) 

 

 

수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착각하고 산다.

소유 했는지 소유당했는지, 앉았는지 얹혀 사는지, 입었는지 입혔는지.....(187쪽) 

 

 

지혜로운 자는 평범 속에서 비범을 발견하고

우매한 자는 비범한 것을 보면서도 평범 이상을 보지 못하는 안목의 차이기 있을 뿐이다. (220쪽)

 

 

물은 아무리 물리적인 힘을 가해도 상처가 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품어서 소화해 버리듯이

참된 사랑은 아무리 어려워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221쪽)

 

 

지혜로운 자는 복의 씨를 '심으려고' 애써고,  어리석은 자는 복을 '받으려고' 애쓴다

......'먹는 밥'과 '심는 밥'이 있고.....'입는 옷'과 '심는 옷'이 있으며...'쓰는 돈'과 '심는 돈' 이 있다. (255-256쪽) 

 

 

종교는 사랑을 목적으로 믿으면 종교의 벽이 없어지지만,

구원이나 소원 성취와 같은 자기 목적을 앞세우면 이내 종교 속에 같혀서 오도가도 못한다.(258쪽)

 

 

동물은 밭에 있는 배추를 뜯어 먹을 뿐이지만  인간은 김치를 창조해내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사랑도 창조해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사람은 맞춰 살아야지 내게 맞는 사람을 찿으려면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266쪽)

 

 

자연은 이기고 올라가지만 인간은 섬겨야 올라가는 법이다.

즉 내려가야 올라가는 것이 인간세계의 원리이다.

그런데 자신은 선택받았다는 우월주의로 말미암아 스스로 담을 만들어 놓고 있다면

그 담은 천국의 담이 아니라 지옥의 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신은 나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를 제물로 해서 내 주변을 구하기 위한 도구로 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물이란 내가 없어야 하듯이 신 앞에 내가 없어야 한다.

선택받았다는 데 고무되지 마라. 신이 선택하신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전체를 선택하기 위한 나'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279-281쪽)

 

 

참된 사랑과 진리만이 내 영혼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다.

그래서 영혼의 불로초는 사랑과 진리이다.

육신은 밥을 먹고 살지만, 영혼은 육신의 삶을 먹고 산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현들은 인류에게 불로초를 선물하러 왔고

더 나아가 진정한 불로초는 자기 스스로의 삶을 통하여 생산(?)해 가야 한다.(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