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린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박해현 님의 글 발췌.
솔의 향기
국화의 계절이 돌아왔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고
국화를 노래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이 다시 생각나는 때가 됐다.
미당의 과거 경력을 놓고 문단에서는 여전히 찬반이 엇갈린다.
미당의 제자 중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문정희·이시영 시인조차 최근 대담을 갖던 중 입장을 달리했다.
"스승을 부정하는 것도 스승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이시영 시인이 말하자,
문정희 시인은 "미당만큼 우리 모국어의 위치를 높인 시인이 또 있는가"라고 반박했다.
갑자기 미당의 친일시 '오장 마쓰이 송가(頌歌)'가 거론됐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살 먹은 사내/(…)/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미당이 1944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발표한 시다.
전쟁터에 끌려간 조선인 청년들의 죽음을 찬양한 이 작품 때문에
미당은 오늘날 '친일문학의 거장'이 됐다.
그런데 이시영 시인은 "마쓰이 히데오(한국명 인재웅)는 죽지 않았어"라며
고은 시인의 시집 '만인보'에 '돌아온 마쓰이 오장(伍長)'이란 시가 있다고 들려줬다.
시단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뒤늦게 2007년에 나온 '만인보' 26권을 검색하니, 고은의 시가 정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죽어간 것이 아니라
/ 미군에 투항 포로가 됐다/ 1946년 1월 10일/ 장렬하게 전사했다던/ 마쓰이 오장
이/ 미군 포로수송선에 타고/ 인천 월미도에 왔다/(…)/지난날 거짓 전사한테/
송가를 쓴 서정주의 송가도 헛것이 되었다'
마쓰이로 불렸던 조선 청년 인재웅이 죽지 않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한국인
특공대원 11명의 삶을 5년 동안 추적한 이향철 광운대 교수에 의해 밝혀졌지만,
소수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문단에서도 대부분 모르는 일이었다.
고은 시인은 스승의 친일시가 '헛것'이었음을 밝힌 시를 쓴 배경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이시영 시인은 "역사가 시인의 작품과 달리 진행됐는데,
시인이 그 시로 인해 죽어서도 욕을 먹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신경림 시인은 최근 한 계간지와의 대담에서 "친일시 몇 편을 썼다고
서정주 문학 전체를 부정할 수 없는 거 아닌가"라며 차분한 평가를 요구했다.
미당 자신이 마쓰이 시에 대해 참회를 한 기록도 한두 군데 남아 있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 1992년 2월 29일자에서도 미당은 "나에게 친일 문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라며
"분명히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사죄했다.
총독부의 압력과 바깥세상에 대한 무지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미당 또한 수많은 '역사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우리는 '거울 앞에 선 미당'을 꽃 한 송이 구경하듯
있는 그대로 바라볼 만큼 성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국화 피는 이 계절에!